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군이 되어보세!/개변된 역사/2부 (문단 편집) === 일본 === 원 역사와 다르게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했다. 그러나 이후 원 역사에서처럼 조선을 공격했다가 자멸하고 다음에 권력을 잡은 히데요시도 반조선 정책을 펼치다가 보복전쟁으로 자멸. 현재는 원 역사와 비슷하게 도쿠가와의 천하가 되었다. 잇따른 전쟁 참패로 영토가 축소되고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해 국가의 역량 자체는 원 역사보다 확연하게 뒤떨어졌으나, 세력 집권 자체는 원 역사와 비슷하게 이루어져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은 도쿠가와의 천하 아래 나름 조선과는 무난하게 보내는 시기가 될 듯하다. 단, 아직 확실하게 도쿠가와가 일본을 통일한 것은 아니며 명목상이긴 하지만 아시카가의 무로마치 막부가 명의 승인 아래 세력을 조금 남겨두었으니 차후 불씨는 남아있다. 원나라 침공 때와 달리 신주 불침의 원칙이 깨졌으니 그로 인한 쇼크나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일본인들은 66개의 주로 구성된 일본 열도를 신주라 하여 하나의 천하이자 신이 천황에게 하사한 땅으로 여겼는데, 그 신주를 외국의 군주가 전쟁으로 뜯어갔으니 일반인들이나 무사들의 충격이 클 것이다. * '''[[해안포]]''' 경인왜란 발발과 함께 히데요시가 이끄는 제1군을 위해 전라도 흥양 해안에 교두보를 마련한 [[고니시 유키나가]]가 해전에서는 조선 수군을 당할 수가 없으니 내놓은 계책. 단순히 해안에서 포격하는 정도가 아니라 노획한 조선군 대포를 흥양 주변 섬들의 고지대에 설치해 상호 엄호하며 십자포화를 퍼부어 조선 수군이 흥양 교두보를 탈환하러 올 수 없게 방어하며, 그 사이에 육군이 조선 수군 기지들을 배후에서 습격 점령해 조선 수군을 내쫓는다는, 조선 수군에 대한 가장 유효한 파훼법을 내놓았으며, 현대적인 [[해안포]] 시스템을 창안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조선에서도 이항복이 거북선을 앞에 세워 해안포 포격을 일부러 유도하는 탱커 역할을 하는 사이 판옥선들이 고각 사격이 가능한 비격진천뢰와 신기전을 해안포대에 [[TOT|다각도로 동시에 퍼붓는 포격]]으로 해안포를 무력화시킨다는 역 파훼법을 내놓았다. 해안포대 대다수가 파괴되어 노획한 화포가 부족해지자 대포 모양으로 깎고 검게 칠한 통나무를 세워놓는 낚시를 했는데 천리경으로 관측한 조선군에게 들통나버린다. * '''남만포''' 1부에서 주인공의 규슈 정벌 영향 때문인지 일본은 실제 역사에서 보다 화포 무장에 신경을 쓰게 된다. 조선 정벌을 나서기 전에 오다 노부나가는 서양 화포들을 사 모으고 남만인 용병을 고용하는 한편, 오오츠츠 같은 대조총도 많이 도입했다. 하지만 조선군을 상대로 그다지 재미는 보지 못했는데, 조선군의 포병 숙련도가 일본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 거기다 남만인 용병들도 몸을 사리는 등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여기에 화포를 주로 수군에 보급했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이순신|자연재해]]급이라... 하지만 왜선의 화포 무장이 올라갔기 때문에 실제 역사보다 조선 수군의 인명 피해도 더 늘었다. 조선군의 화포에 맞서 일본군 내에서도 자체적으로 화포를 생산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노부나가의 지시로 일본 본토에서 화포를 생산하게 되는데, 이렇게 생산한 화포 중 일부가 철수하는 일본 수군을 호위하는 전선들에 탑재되어 실전에 투입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고 나머지 대부분의 생산 물량은 대마도를 요새화하는데 사용된다. * '''대형선박''' 조선 수군이 만만찮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엄청나게 많은 배를 찍어냈다. 여기에 덩치가 판옥선과 맞먹거나 그 이상인 안택선을 제작하고 스페인 갤리온 선단까지 고용한다. 하지만 포병 숙련도가 부족한 문제와 선박 운용을 지혜롭게 하지 못해서 대형 안택선들은 죄다 격파당하고,[* 사실 실제 역사에서 일본 수군이 포를 많이 쓰지 못한 건 첨저형 디자인과 그놈의 삼나무 재질 때문이라서, 물리학적으로 포를 쓸 수 없는 저주를 받아(...) 배를 암만 크게 만들어봐야 의미없다.] 갤리온 선단은 벽란도를 기습하려다 경기 수군에 격파당하거나 나포된다. * '''[[순왜]]''' 원 역사와 달리 조선이 건재함에도 [[국경인]] 등 하성군 계열의 순왜가 대량으로 발생한다. 노부나가의 회유에 넘어간 임해군이 일본 측에 붙어버리며 일본에 남아있던 하성군의 가솔들과 조선에 있던 하성군 집안의 외거노비들 다수가 길 안내와 각 지역 내부로 잠입해 문을 열어줘 손쉽게 지역들을 점령하게 만드는 등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여 왜란 초반부 왜군이 선전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하지만 충직한 하성군의 서기가 목숨을 걸고 조선에 하성군 집안 노비들이 순왜임을 알려서 출가한 광해군을 제외한 하성군 집안 사람을 모두 체포한다. 진실이 알려지고 하성군의 노비 일부가 분노한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한다. 원래는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하지만 사태가 사태여서 처벌은 받지 않았다고. 이후 거듭된 패전에 광기에 휩싸인 노부나가가 패배를 내부 간자 탓으로 돌리자 하시바 히데요시는 일단 쓸모없어진 '''순왜들을 모두 간자 혐의로 죽여''' 노부나가의 분노를 달래고 조선과 협상해 철수하도록 간언, 그때까지 왜군 진영에 남아있던 순왜들은 도망친 임해군과 국경인, 그 외에 따로 투항하거나 포로가 된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왜군의 손에 참수되었다.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귀순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처형할 계획이며 국경인은 원 역사의 행적과 죄질도 나쁘지만 임해군을 데려온 공이 있어서 죽일지 살릴지 고민하다 결국 죽였고, 임해군은 명나라에서 초빙한 [[능지형]] 기술자에게 '''1천 조각으로 회를 떠''' 죽인 다음 시신으로 [[젓갈]]을 담가 전국에 조리돌림 했다. 원균은 순왜들이 죄다 처형될 때 후방에 있어서 참수를 면했고, 이후 히데요시가 원균이 자신을 노린 시마즈 토시히사의 화살에 맞아줬던 은혜를 기억해서 원균만은 빼내 살려준데다 일기도주로 봉하기까지 했다. * '''조선 토란''' 감자(담저), 고구마(감저). 왜군이 식량 확보를 위해 약탈하면서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미 옥수수는 일본에서도 남만인들을 통해 수입해서 재배 중이나 감자와 고구마는 조선에서 처음 목격했다. [[고구마|길쭉하고 단맛 나는 종류]]와 [[감자|둥글고 심심한 맛이 나는 종류]]로 구분한다. 고니시도 먹어보고 괜찮은 작물이라고 생각하며 나중에 본국에 가져다 심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을미동정 이후 조선에서 가뭄이 4년 동안 이어졌을 때[* 그래서 이 시기 동안은 본의 아니게 노동력이 남아돌아서 잉여 노동력을 산성이나 대성당 등을 쌓는 토목공사에 돌렸다.] 식량 확보를 위해 일본에서 쌀을 많이 수입해 갔으나,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옥수수 덕분에 대량으로 굶어 죽는 사태는 피했다고 한다. "감자와 고구마를 손에 넣은 게 아마 지난 전쟁(을미동정)에서 일본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이라고 주인공이 독백하는 걸 보면 을미동정 때 조선군이 현지에서 식량으로 쓰려고 심었던 감자와 고구마가 퍼져 나갔다. * '''[[온돌]]''' 연해주에서 겨울을 난 다테 마사무네가 온돌의 따뜻함을 몸소 느끼고 자신의 영지에도 도입하려 한다. 그래서 조선에 온돌 기술자를 요청하고 이 틈에 도자기를 조금이라도 만들 줄 아는 사람을 끼워 넣으려 했지만 주인공이 그냥 일본 기술자에게 온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라고 지시하여 이건 실패. 그래도 다테의 영지를 중심으로 일본에도 온돌이 퍼지게 되었다.[* 여담으로, 실제 온돌은 한 번 공기를 데운 다음 그 공기로 다시 바닥을 데우는 것이라 열 효율 자체는 화로보다 나쁜 난방방식이다. 온돌의 장점은 요리할 때 쓰는 폐열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난방에 전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난방효율이 나쁘다는 점 때문에 조선의 산림이 빠르게 파괴된 걸 보면, 아마 일본도 빨리 석탄 테크로 넘어가지 못하면 땔감 부족으로 고생깨나 할 것이다.] * '''북방인 기병''' 무자호란 이후 울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건주위에 흡수되었다. 조선에 가장 적대적인 부족으로 2부에서는 [[정여립]]이 사실상 울라부 총독이자 파병된 울라부 기병들을 감시하는 [[정치장교]]로 활동했다. 경인왜란에도 참전했으며, 경인왜란이 끝난 후 조선과 우호관계를 맺은 [[다테 마사무네]]에게 용병으로 울라부 기병 1천을 파견하기로 하자 부장 부잔타이가 반란을 일으키고 건주위로 도주했다. 그러나 건주위의 누르하치는 아직까지는 조선과 우호를 유지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잔타이와 울라부를 몰살시켜 버린다. 성인 남자들은 조선에 보내고 여자와 아이들은 건주위의 노예가 되어 울라부는 다른 해서 부족들의 뒤를 따라 멸망한다. 조선에서는 다테 마사무네에게 2천 명의 울라 기병을 보냈으나 그중 1천 명은 도망가고 1천 명은 다테 휘하 왜병들의 감시를 받으며 일본으로 떠난다. 이들을 확보한 다테는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대규모로 기병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개중에는 다테 가에서 탈영하여 다른 영주 아래로 들어가 용병 일을 하는 무리도 생겼다. 시간이 지나자 다테쪽도 2백기 가량으로 줄어든 상황. 다테 스스로도 여진인들 자리잡게 해주고 말 품종 개량도 나선 모양인데 한 것에 비해 성과는 부족했던 모양. 이후 슈르하치가 숙청되고 그의 아들 아민이 기병 1천기를 끌고 조선에 귀순하자 나중에 건주와 분쟁거리가 될 걸 우려한 주인공이 조선이나 건주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본에 보내기로 하며, 누르하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지라 그 대신 누르하치 본인이 부릴 수 있는 왜병들을 받아가는 것으로 거래가 성립, 아민과 휘하 여진 기병들이 일본에 정식으로 눌러앉게 된다. 그런데 아민이 다이묘로 임명되면서 하사 받은 영지가 하필이면 사나다 씨의 영지였던 곳, 현대의 [[군마현]]에 해당하는 곳이었기에 그 소식을 들은 주인공은 아민과 여진인 기병들이 눌러앉은 지역이 [[미개의 땅 군마|현대 일본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떠올리고]] 실소를 금치 못한다. 도쿠가와가 정권을 잡았지만 영주들 전부가 진심으로 복종하는 건 아니라 잠재적 위험요소가 있는 상황에서 정예 기병 1천기는 기병 전력 자체가 부족한 일본에서 강력한 전력이 된다. 나중에 조선과 또다시 분쟁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 말 키우기 어려운 건 둘째치고 어차피 조선군 전력이 압도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